창조주를 기억하라 전도서 12장 1절
2021.01.22 226 관리자
1. 그러니 좋은 날이 다 지나고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구나!" 하는 탄식 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오기 전, 아직 젊었을 때에 너를 지으신 이를 기억하여라. (공동번역)
무더위 속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를 쓰던 날이 어제만 같은데, 어느덧 완연한 가을날입니다. 하늘은 높고 산마다 단풍으로 물들었으며 들녘은 가을걷이로 분주합니다. 더 추워지기 전, 겨울을 준비합니다. 사람들은 겨우내 먹거리인 김장을 하고, 동물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준비하며, 나무들은 모든 이파리를 떨구고 죽은 것처럼 겨울을 지날 준비를 합니다. 계절에 따른 모습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습니다. 봄과 같은 싱그럽고 자라나는 어린 시절, 여름처럼 뜨거우리만큼 열정을 지닌 청장년, 가을 같이 인생의 열매를 맺어가고 완숙미가 생기는 중년 이후의 삶, 겨울과 같이 모든 것이 사라지는 죽음의 때로 나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을 계절로 구분할 때, 나이로만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겨울 같은 죽음이 갑자기 닥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겨울이 오기 전, 인생의 가을이란 계절이 언제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지혜의 왕 솔로몬의 글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아가서’를 지었고, 중년에는 자신의 지혜를 담은 ‘잠언서’를 적었으며, 노년에는 자신의 평생의 깨달음을 기록한 ‘전도서’를 적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의 말씀은 솔로몬왕이 사람들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며, 후대에 전하고픈 유언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젊은 시절, 하나님께 구하여 받은 지혜로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자신의 업적을 세우는데 치중했습니다. 그러나 노년이 되자 삶의 헛됨을 깨닫고 전도서를 기록한 것이지요. 삶의 모든 쾌락과 기쁨을 누리던 것을 넘어서서 영원에 대해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 돌이켜 보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좋은 날이 다 지나가고 사는 재미가 없다는 탄식을 하기 전’에 “너를 지으신 이”를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실존주의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는 인간 실존을 세 가지 단계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의 말씀과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의 인간 실존의 첫 단계는 미적 실존(Aesthetic existence)입니다. 이는 인생의 기준이 미와 쾌락, 편안함과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영원하지 못하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더 큰 쾌락과 다른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를 반복하다보면 인간은 쾌락의 노예가 되고 불안하게 됩니다. 그때 인간의 실존은 미적 실존의 벽을 깨닫고 윤리적 단계로 한 단계 도약하게 됩니다.
두 번째 윤리적 실존(Ethical existence)은 양심을 가지고 도덕적으로 살려는 모습입니다. 미적 실존의 쾌락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것과 달리,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것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도덕적으로 완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양심을 가지고 더욱 높은 도덕적 기준을 따라 살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는 무력감과 인간 내면에 있는 죄의 문제, 궁극적으로는 죽음이라는 불안에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인간은 불안과 절망이라는 터널을 뛰어넘기 위해 종교적 실존을 추구하게 됩니다.
세 번째 종교적 실존(Religious existence)은 신앙의 가치를 따라 살면서 신앙에 의해 본래적인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삶입니다. ‘신 앞의 단독자’로서 신을 믿고 따를 때, 인간으로서의 절망과 죽음을 초월해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먹고 사는 문제에만 머무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지향하는 삶이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인간으로서 살아갈 때 겪는 두려움과 절망을 하나님과 연합함을 통해 평안을 누리고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란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란 뜻의 라틴어입니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행진할 때, 노예를 시켜서 행렬 뒤에서 큰 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살아라.’란 의미라고 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히9:27)”은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이 평안하고 아름답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순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젊은 날에는 부귀영화와 쾌락을 누리며, 중년에는 잠언을 적어 올바른 것들을 교훈하였지만, 결국에는 죽음의 문제 앞에, 인간의 근원적인 절망 앞에 창조주를 기억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지금, 가을과 같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를 지으신 이를 기억’해 풍성한 삶을 누리시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42601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1035
대표전화 : 1577-6622팩스 : 053)258-7130
COPYRIGHT (C) KEIMYUNG UNIVERSITY DONGSAN MEDICAL CENTER. ALL RIGHTS RESERVED.